가족관계 특이사항 있음 깊이 읽는 방법

얼마 전 책 제목을 훑다가 ‘가족관계 특이사항 있음’이라는 문구 앞에서 잠깐 멈췄어요. 서류의 작은 칸에 적힐 법한 말인데, 그 안에 어떤 사연이 들어 있을지 궁금해지더라고요. 마민지 작가의 이 에세이는 엄마를 돌보고 떠나보낸 시간에서 출발합니다. 이후 유품에서 몰랐던 이야기를 발견하면서 가족을 다시 바라보게 되죠. 출판사 클이 소개한 차례를 보면 책은 ‘상실’, ‘애도’, ‘비밀’, ‘이별’의 네 부분으로 이어집니다. 이 흐름을 알고 읽으면 사건의 반전만 좇기보다, 사건을 겪는 사람의 마음에도 눈이 갑니다.
처음에는 가족의 ‘사건’보다 돌봄의 시간을 읽기
책의 앞부분에는 코로나19로 아픈 엄마를 돌보는 시간과 엄마를 떠나보낸 뒤의 일상이 놓여 있습니다. 병원에 가고, 상태를 살피고, 가족에게 소식을 전하는 일은 겉으로 보면 평범한 하루의 반복 같아요. 그런데 간병하는 사람에게는 그 반복이 하루를 거의 다 차지하기도 합니다. 책 소개에 적힌 ‘돌봄을 시작하다’, ‘나는 K-장녀’ 같은 장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다음에 무슨 비밀이 나오지?’ 하는 마음을 잠시 늦춰도 좋겠습니다. 누가 아픈 사람 곁에 있었는지, 돌보는 사람은 자기 생활을 얼마나 조정해야 했는지 살피는 거예요. 가족 이야기에서 돌봄은 종종 당연한 역할처럼 지나가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의 시간과 체력을 쓰는 일입니다. 그렇게 읽으면 뒤에 이어지는 작별도 갑자기 벌어진 한 장면이 아니라, 여러 날의 기억이 쌓인 일로 다가옵니다.
유품에 남은 물건을 단서처럼 따라가기
엄마가 떠난 뒤 저자는 유품을 살핍니다. 차례에는 여행기와 레시피 노트, 1988년 가계부, 메모 같은 물건이 등장해요. 오래된 가계부 한 권은 숫자만 적힌 종이가 아닐 수 있죠. 그해 무엇을 사고 아꼈는지, 어떤 일을 기록해 두었는지에 따라 한 사람의 생활이 조금씩 보이니까요. 레시피 노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주 만들던 음식의 흔적일 수도 있고, 가족에게는 함께 먹었던 저녁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일 수도 있습니다.
읽다가 물건 하나가 마음에 걸리면 그 장면에서 잠깐 멈춰 보세요. ‘저자는 이 물건을 보기 전 엄마를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보고 난 뒤에는 무엇이 달라졌을까’를 생각해 보는 겁니다. 다만 모든 물건을 비밀을 푸는 열쇠로만 볼 필요는 없어요. 어떤 기록은 답을 주고, 어떤 기록은 그 사람이 살아온 평범한 하루를 남깁니다. 둘 다 가족을 알아 가는 데 중요한 흔적입니다.
서류에 적힌 관계와 함께 살아온 관계를 나란히 보기
책의 제목은 짧고 단정한데, 실제 가족의 모습은 그렇게 간단히 적히지 않습니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엄마의 유품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실을 발견하고 자신의 출생과 가족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여기서 ‘누가 누구와 어떤 관계인가’를 확인하는 일은 중요해요. 동시에 그동안 누가 곁에서 밥을 먹고, 아플 때 돌보고, 함께 시간을 보냈는지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가족을 하나의 기준으로 재단하기보다 두 장면을 나란히 놓고 읽을 때 더 오래 남습니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이 과거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어 보이게 하는지, 반대로 함께 살아온 시간은 그 사실 앞에서도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는 거죠. 혈연과 돌봄 중 하나만 골라 답을 내리려 하면 저자가 겪는 복잡한 감정을 놓치기 쉽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서류의 한 칸처럼 말끔하게 나뉘지 않으니까요.
읽고 난 뒤에는 내 가족의 작은 기록 떠올리기
책을 덮은 뒤 거창한 감상을 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떠오르는 장면 하나만 붙잡아도 읽은 시간이 남아요. 이를테면 가족이 늘 해 주던 음식, 병원에 함께 갔던 날, 뒤늦게 발견한 오래된 사진 같은 것들입니다. 같은 일을 겪어야 책에 공감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누군가를 돌보거나 그리워했던 기억이 있다면 다른 대목에서 마음이 멈출 수 있습니다.
상실과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만큼 읽는 속도를 조절해도 좋겠어요. 마음이 무거운 날에는 한 장만 읽고 쉬어도 됩니다. 저는 ‘특이사항’이라는 단어가 책을 읽고 나면 조금 다르게 들릴 것 같습니다. 남들에게는 한 줄로 적히는 사연도,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에게는 수많은 평범한 날과 애틋한 관계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