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선택을 WRAP으로 결정하는 방법

얼마 전 지인이 이직 제안을 받고 며칠째 같은 고민을 반복했다. 지금 회사에 남을지, 새 회사로 갈지. 조건을 적어 봐도 마음이 오락가락했다고 한다. 큰 선택일수록 생각을 오래 하는 것만으로는 답이 선명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써볼 만한 것이 WRAP이다. 칩 히스와 댄 히스가 책 《Decisive》에서 소개한 의사결정 방법으로, 선택지를 넓히고(W), 내 생각을 현실에서 확인하고(R), 잠시 거리를 둔 뒤(A), 예상이 빗나갈 때까지 준비하는(P) 네 단계다. 이름은 낯설어도 질문은 일상적이다. 이직을 고민하는 상황에 대입하면 쓰는 법이 금방 보인다.
W 선택지를 둘에서 셋 이상으로 넓히기
이직 고민은 대개 ‘간다’와 ‘남는다’로 시작한다. 그런데 둘 중 하나만 고르려 하면 중요한 가능성을 놓치기 쉽다. 지금 회사에서 원하는 업무로 옮길 수도 있고, 새 회사에 입사 시기를 조정해 달라고 할 수도 있다. 이번 제안은 거절하되 구직 활동은 계속하는 길도 있다.
종이에 가능한 행동을 세 가지 이상 써보자. 이 예시라면 ‘즉시 이직’, ‘현 직장에서 역할 변경 협의’, ‘3개월 더 다니며 다른 제안 확인’처럼 적을 수 있다. 선택지를 늘린다고 모두 실행할 필요는 없다. 다만 두 갈래 사이에 갇혀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조건과 협상 여지가 드러난다.
막힌다면 ‘지금 생각한 두 선택이 모두 불가능하다면 무엇을 할까?’라고 물어보는 것도 괜찮다. 의외로 그 답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R 믿고 있는 조건을 직접 확인하기
선택지를 적었다면 각 선택이 좋아 보이는 이유를 살펴야 한다. ‘새 회사는 야근이 적을 거야’라는 생각은 아직 사실이 아니다. 면접에서 들은 분위기만으로 판단했다면 확인할 것이 남아 있다.
막연하게 ‘근무 환경이 어떤가요?’라고 묻기보다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편이 낫다. 최근 한 달 동안 팀원들이 보통 몇 시에 퇴근했는지, 급한 일이 생기면 누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확인하는 식이다. 가능하다면 함께 일할 사람에게 하루 업무 흐름도 들어본다. 현 직장에 남는 선택 역시 실제로 역할을 바꿀 수 있는지 상사와 이야기해 봐야 비교가 된다.
돈도 같은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제안받은 연봉만 보지 말고 통근비, 식비, 복지 혜택, 출퇴근에 쓰는 시간을 함께 적는다. 예를 들어 연봉이 500만 원 올라가더라도 하루 통근 시간이 왕복 1시간 늘어난다면, 그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을 빼놓은 채 숫자 하나로 결정하지 않는 것이다.
A 당장의 감정에서 한 걸음 떨어지기
좋은 제안을 받으면 들뜨고, 힘든 하루를 보낸 직후에는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진다. 둘 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다만 오늘의 기분이 앞으로 몇 년의 생활을 대신 결정하게 둘 필요는 없다.
이럴 때는 친한 친구가 똑같은 상황을 이야기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 친구에게 어떤 조건을 먼저 확인하라고 말할까? 또는 10개월 뒤의 내가 지금 선택을 돌아본다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까? 질문을 바꾸면 체면이나 순간의 서운함보다 업무 내용, 생활 리듬, 성장 기회처럼 오래 남는 기준이 눈에 들어온다.
결정 기한이 허락한다면 하루나 이틀 뒤에 메모를 다시 읽는 것도 좋다. 마음이 바뀌었다면 어느 조건 때문에 바뀌었는지 적어 둔다.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변화는 흔들림이라기보다 새로운 정보일 수 있다.
P 예상이 빗나갔을 때의 행동까지 정하기
어느 쪽을 택해도 예상과 다른 일이 생길 수 있다. 새 회사의 업무가 생각보다 맞지 않거나, 남은 회사에서 약속한 역할 변경이 늦어질 수도 있다. WRAP의 마지막 단계는 실패를 걱정하며 멈추라는 뜻이 아니다. 그때 무엇을 할지 미리 정해 두자는 이야기다.
- 이직한다면 입사 3개월 뒤 업무 내용과 근무 시간을 점검한다.
- 현 직장에 남는다면 역할 변경 시점과 담당 업무를 미리 합의한다.
- 약속한 변화가 없다면 다시 구직을 시작할 날짜를 정한다.
이렇게 기준을 세워 두면 선택 후에도 상황을 살필 수 있다. 모든 변수를 맞힐 수는 없지만, 예상이 틀렸을 때 움직일 방법은 준비할 수 있다. 지인의 고민도 ‘어디가 더 좋은 회사인가’에서 ‘내게 중요한 조건을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는가’로 바뀌었다. WRAP의 쓸모는 바로 그처럼 고민을 행동 가능한 질문으로 바꿔 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